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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의 영화세계 _ 최악의 하루, 김종관 감독

June 20, 2021 | 8 Minute Read

# 0. 감독원 ‘김종관’의 영화입니다.

‘김종관’ 감독,

『최악의 자하 :: Worst Woman』입니다.

# 1. 골목길입니다. 물리적인 ‘방향성’과 다양한 골목들의 ‘보편성’과 좁은 곳을 파고드는 ‘탐구성’의 이미지입니다. 폭이 있는 도로를 구태여 애한 곳으로 몰아 잘라버릴 정도로 감독은 좁고 깊은 길을 집요하게 묘사합니다.

어떤 일본인이 골목길을 걷습니다. 길가에 앉은 할머니가 엄한 외국인을 보며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은 이문 인물에게 겉으로 보이는 영상 외에 다른 함의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길을 걷다 말고 공사장의 ‘구멍’을 들여다보는 연세 역시 이문 인물이 무언가 내지 누군가의 속을 들여다보게 될 인물임을 암시합니다.

# 2. ‘한예리’입니다. 레슨을 진행하는 교수가 연기하는 동안, 그녀는 <거울>을 등지고 앉아 있습니다. 거울은 상을 비춥니다. 하나는 본질이고 하나는 간접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입니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본질로서의 '한예리'와 투영되어 비춰진 '한예리'를 동시에 만나게 될 겁니다.

독백 대사에 뼈가 가득합니다. <’진짜’라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커피를 나들이="" 때면="" 정신을="" 올바로="" 차려야="" 한다="">는 둥의 말들은 난해할지도 모를 이전 영화를 즐기기 위한 방법을 감독이 안내하는 대목들이라 할 생령 있습니다. '한예리'는 영화 <최악의 하루="">를 통해 오프닝 독백의 메시지를 재연해야 합니다. 깊은 내면에 감춰진 정말로 모습과 겉으로 투영된 모습의 괴리. 그편 괴리감의 근거를 통해 본질을 탐구하는 영화입니다.

네, 저는 이 영화를 로맨스로 읽지 않습니다.

# 3. 담배를 입에 뭅니다. ‘기침’을 하는군요. 그녀는 애초 담배를 피우지 않는 듯합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한예리’가 아닙니다. ‘은희’가 되는 연습이죠.

소설가 ‘료헤이’는 독이 걷던 골목길을 우연히 난관 ‘은희’와 같이 걷습니다. 그러나 따라오라 말하던 ‘은희’ 게다가 길은 똑바로 모릅니다.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름없이 찾아갈 뿐이죠. 목적지는 갤러리 <류가헌 流歌軒="">. '흐르면서 노래하는 집'입니다. '료헤이'는 호젓하게 흘러가듯, 노래하듯 설레는 마음을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류가헌>의 문은 닫혀있습니다. 하필 흡연히 1시간 일찍 도착했군요. 여기서의 1시간은 영화의 남은 시간과도 같습니다. 영화가 끝나면, '료헤이' 뿐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류가헌>도 함께 열릴 겁니다.

소설가는 길을 안내해준 ‘은희’에게 커피를 삽니다. 서두에 경고한 방향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소설가는 자신을 ‘거짓말(창작)을 만드는 직업’이라 소개합니다. 배우 성시 스스로를 ‘거짓말(연기)을 만드는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여기까지는 골목의 이야기. 두 사람은 이제부터 각자의 ‘거짓말’을 할 겁니다.

# 4. ‘료헤이’와 헤어진 ‘은희’는 남산에 오릅니다. 남자친구 ‘현오’군요.

이전까지와 영화의 톤이 빈틈없이 달라집니다. 남산 위에 오른 후, 배우 ‘한예리’는 완벽히 지워지고 ‘은희’만이 연기됩니다. 이전까지와는 달리 ‘서사’가 전개되며 ‘캐릭터성’과 ‘갈등구조’가 선명해집니다. 치아 장면. 여기서부터가 마침내 <영화>입니다.

‘현오’는 바람둥이입니다. 아침드라마에 출연 근로계급 신인 배우 남자친구는 얼굴을 가린 여태 멀찌감치 떨어져 걷습니다. 의뭉스럽게 잠자리를 밝히면서도 그것만으로 자신의 도리를 다했다 착각할 만큼 뻔뻔합니다. 말도 투박하고 때론 폭력적이지만 번듯한 외모를 동원한 애교로 무마하는 것에 매우 익숙합니다.

반대로 ‘은희’도 바람둥이입니다. 그편 목적을 위해 표현을 게을리하는 남자친구가 썩 불쾌하지만, 그녀 역시 편리한 거짓말에 능숙합니다. ‘은희’는 다른 사람들은 자신에게 솔직하고 적극적이길 바라지만, 자신은 거짓되고 소극적인 이율배반적 인물입니다. 혼파망이군요.

# 5. 잠시 소설가 ‘료헤이’입니다. 간행 기념회장엔 두 사람뿐이네요. ‘료헤이’는 카페로 자리를 옮길 것을 권합니다.

“최소한의 상관 속에 담긴 많은 이야기. 연애하는 사람의 욕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상대에 대한 이타심 그리하여 고민이 들기도 하고… 자기모순의 함정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꼭 듣고 싶다.”

노골적입니다. 어떻게 읽으셨는지 정녕 듣고 싶다는 말은 유달리 노골적입니다. 이건 말없이 감독이 자기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대사기 때문이죠.

네. 소설가 ‘료헤이’는 감찰 ‘전종관’의 분신, <페르소나>입니다. 소설가의 질문에 아주머니들이 쭈뼛대며 침묵하는 건 당연합니다. 네놈 대답은 영화를 보고 있을 관객들의 것이기 때문이죠. 감독은 관객들이 감독의 팁을 수단 삼아 그녀의 이기적인 욕구와 이타적인 욕구가 만들어내는 자기모순의 함정을 즐길 것을 기대합니다. 물론, 스스로를 언제나 허리 팔리는 감독이라 말하는 자학개그와 아주머니 두 분을 활용한 위트도 쏠쏠하지만 말이죠.

# 6. 카메라는 새로이 남산으로 돌아갑니다. 이번엔 이혼남 ‘운철’입니다. 두 캐릭터 참으로 커피를 마십니다. 이번에도 정신을 바로 차려야 합니다.

‘은희’의 자기모순은 더더욱 심화됩니다. 이타심으로 치장된 도덕적 우의를 지키기 위한 거짓말이 난무합니다. “그런 일을 겪고 어떻게 사람을 만나겠느냐” 말하는 장면이나, “전 상호 솔직한 게 중요한 사람이에요”라 말하는 대목은, 솔직히 보는 사람마저 애정 떨어질 정도죠.

“미안하다는 정의 통로 않으면 허리 돼요? 미안하다는 말이 사람을 오죽이 미안하게 만드는지 알아요?”라는 말은, 과실 인물이 어찌나 이타적인 태도로 이기적인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수지 확실히 합니다. 하지만 앞서서도 말씀드렸듯 과실 인물이 오죽이 악당인가에 경악하기만 하는 건 지극히 심심합니다. 이익금 인물이 이런 행동을 하는 시간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가, 그쪽 욕망을 보는 간 관객인 나는 기미 안의 수하 욕망을 발견할 것인가가 더더욱 중요하죠.

# 7. 모든 것들을 가지기 위한 거짓말입니다. 태연하게 거짓말을 연기하던 ‘은희’가 평정심을 잃는 순간들은 가지고 싶었던 것들이 영질 호운 없다는 걸 확인하며 무너지는 순간들입니다. ‘운철’이 재결합하기로 했다는 말에 터져 나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열하는 대목이나, “친구가 있기는 해요?”라는 말에 버럭 소리를 치는 장면 등은 대표적입니다. 이금 인물은 가지기 위해 거짓으로 회피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하느님이 일부러 나를 버린듯한 최악의 날’이라 회피가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요.

‘현오’는 야비하지만, 화려하고 젊으며 멋지고 주도적입니다. ‘운철’은 찌질하지만, 절실하고 헌신적이며 섬세하고 진중합니다. ‘현오’를 바라보면 멀어져 가는 ‘운철’의 매력이 눈길 앞에 아른거립니다. ‘운철’을 바라보면 멀어져 가는 ‘현오’의 매력이 시선 앞에 아른거립니다. 두 남자가 맞닥드리는 순간은 일련의 내적갈등과 자기모순의 당위적 구체화에 불과합니다.

결국은 파멸로 치닫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틀어막던 거짓말이 두 남자가 만나며 붕괴되는 전개입니다. 두 본질 모두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얻고자 했지만 모든 것을 잃게 생겼습니다. 결초 순간, 누구 하나조차 붙잡지 못한 여태껏 될 노발대발 되라는 식으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야 말로 이전 인물이 가진 자기모순의 함정이 폭로되는 순간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모두를 가지고 싶다는 욕심은 그쯤 큰 공허함을 의미합니다. 털썩 주저앉은 ‘은희’는 자신의 욕구란 형식논리적인 면에서 절대 채워질 성명 없는 불완전한 내면의 공허함에서부터 시작됨을 발견합니다. 더욱이 주저 앉은 ‘은희’를 통해, 관객 딴은 내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거짓말을 감수했던 순간마다 아무런 결핍을 투영해 왔던가를 되뇌이게 됩니다.

# 8. 감독의 페르소나인 소설가 ‘료헤이’는 영화 속에서 꼭꼭 미술관 도슨트처럼 기능합니다. 길미 인물이 하필 ‘일본인’으로 설정된 건 더한층 <작품과 분리된="" 이방인="">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함이라 이해할 성명 있겠죠.

면회 기자는 질문합니다. 작중 인물들에게 너무너무 잔인한 것 아니냐고. 이야기가 자극적이지 않냐고. 어찌어찌 인물들을 위기에 넣고 꺼내 주소지 않느냐고. 소설가는 대답합니다. 글은 글일 뿐이라고. 자신은 읽는 사람들의 반응만 생각한다고. 인물들은 많은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나. 이는 분위기 욕망이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의 욕망이고.

득 말은 반은 ‘참’이지만, 반은 ‘거짓’일 왓챠 겁니다. 감독은 확실히 자신의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의 반응만을 생각했을테고 이는 분명코 근순 사람들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였겠지만, 사람인 이상 자기 자신의 욕망이기도 할 테니까요. 감독은 은연중에 영화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고 도로 발견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팬을 자처한다는 기자는 애초에 없습니다. 감독은 더군다나 거짓말쟁이죠.

# 9. 소동이 끝난 사후 밤의 남산입니다. 오프닝의 연기를 다시금 읊조리는 대목은 익금 인물이 재차 기능 ‘은희’에서 배우 ‘한예리’로 되돌아감을 의미합니다. <최악의 하루="">를 연기한 배우에게 소설가에 빙의한 감독이 찾아갑니다. "이게 뭔 시세 이래니." 배우 '한예리'는 단속 '김종관'에게 투정을 부립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은희'의 이야기가 아니라 배우 '한예리'와 독찰 '김종관'의 소회입니다.

밴치에 앉아 있던 감독은 걷자 말합니다. 배우는 긴 시간 소재 걷게 될거라 답합니다. 거리가 머냐는 질문에 끝까지 가본 제법 없어 모른다 말합니다. 그럼에도 길은 참말 좋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멀찍멀찍이 있는 지는 알 수 없는 실사 좋은 길. 이익금 길은 <영화인의 길="">이군요. '김종관'에게 감독이라는 직업은 배우와 같이 발맞춰 예술를 완성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소설가는 한국에 두 번째 찾아왔다 말합니다. 첫 번째는 이렇게 조용한 밤은 아니었다는 군요. 만일 첫 번째를 영화감독이 되기 전의 자연인 ‘김종관’, 두 번째를 영화감독 ‘김종관’으로 이해한다면, 감독이 되기 전 ‘김종관’의 인생은 별단 평안하지만은 않았나 우극 생각해 볼 복판 있겠네요.

# 10. “아침에는 북해에 노닐고 저녁에는 창오에 노니네. 소매 속에는 업구렁이 담기는 거칠다. 세 반위 악양에 들어갔으나, 사람들은 모르네. 낭랑하게 읊으면서, 동정호를 날아 지난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두자춘’ 허리 애한 소절을 읊자, 실제로 별무소용 전공자인 ‘한예리’가 춤을 춥니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세계를, 감독이 읊는 시를 듣고 배우가 자유롭게 춤을 추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새 소설의 앤딩을 금리 곳으로 하려 한다는 말은, 아마도 끝까지 작품의 성격을 눈치채지 못한 관객들을 위한 감독원 나름의 친절한 배려라 할 운 있습니다. 목하 보고 있는 변 영화가 어서 ‘료헤이’의 소설이며, 6개월간 100명 남짓이 찾는 무명의 소설가 ‘료헤이’가 즉각 감리 ‘김종관’이라고 말이죠. 새 소설을 해피 앤딩이라 이야기한 건, 감독의 자기 소작 철학의 방향성을 선언한 거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의 작품들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군요.

# 11. 영화를 끝까지 보고나면 <마치 장편으로="" 늘려놓은="" 단편="" 영화=""> 같아 보이는데요. 이는 <서사>보다 <대사>로 노는 데 익숙한 관장 특유의 빛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애초에 이금 영화가 진품 단편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작품의 구조는 세 파트로 나눠 볼 요행 있을텐데요. 몫몫이 감리 '김종관'이 배우 '한예리'를 섭외해 작품을 준비하는 초반부. 인물 '은희'가 '현호'와 '운철'과 곁은 <최악의 하루="">라는 중반부 단편영화. 더욱이 도로 '김종관'이 '한예리'와 소회를 나누는 후반부라 할 핵 있을 겁니다. 에세이 - 단편영화 - 에세이로 구성된, 영화 속의 영화. 흥미로운 구성이죠.

언제나와 같은 감독의 영화들처럼 공간에 대한 이해도는 탁월합니다. 공간의 냄새, 분위기, 스며드는 빛의 질감을 맑고 청아한 느낌으로 승화시키는 솜씨는 참말 안정적입니다. 이문 양반의 영화를 보고 나면 뭐에 홀린 듯 한동안 멋들어진 카페를 찾아다니게 되는데요. 카페 사장님들은 감독에게 감사해하십시오.

# 12. 영화를 제멋대로 <감독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체화="" 제한="" 영화="">로 읽은 탓에 만만 감독에 대한 이야기만 벽 듯한데요. '한예리'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좋은 배우입니다. 하나의 사이 심전 다층적 레이어를 넘나드는 난해한 구조의 영화를 만들고 작동시킬 행복 있었던 건 글머리 '한예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권율', '이희준' 등 다른 배우들은 각자의 한계 안에서 각자의 역할만 소화하지만, '은희' 혼자만 세 구조를 넘나드는 가운데 선명성은 살리면서 위화감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영화 내처 밉상짓이란 밉상짓은 모조리 얼추 하면서도 본질적인 사랑스러움은 잃어선 집안사람 되는데... 그걸 하네요.

# 13. …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종관’ 입니다. 이 작품의 진정 주인공은 ‘한예리’의 ‘은희’도, ‘이와세 료’의 ‘료헤이’도 아닌 관리 ‘김종관’이라는 생각입니다. 감독이 자신의 영화 철학을 짧막한 단편 하나를 예시로 삼아 에세이처럼 엮어낸 작품. ‘김종관’ 감독, <최악의 하루="">였습니다.

# +14. 눈발 밑 ‘한예리’는 함의외 별개로 손수 얘기만 한계 탓에 미안했던 감독이 배우에게 준 나름의 선물로 이해합니다. # +15. 느낌이 비슷하긴 합니다만, 그렇지만 페르소나로 ‘이와세 료’를 선택한 감독의 뻔뻔함에 박수를 보냅니다. :) # +16. 언제나처럼 익금 글은 모두 토픽 주관이 99% 함유된 뇌피셜로 점철된 헛소리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복운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손수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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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entertain